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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작가 정신 (작가노트)  

    내속의 나

   나는 왜 호박을 그리는가?

   왁새골의 봄

   햇빛과 바람의 추억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








(햇빛과 바람의 추억)
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어둠이 쉽사리 눕지 않는 방이 있었다
방은 어둘 수록 더 밝은 그늘 만들며 충만하고
장수거북 닮은 화가는 들판을 열며
깊은 생명의 바람을 몰아 간다
이 벽 저 벽 건너 다니는 호박들 무성한 이야기 품고
풀잎위로 침묵과 바람의 싹들 채운다.

햇빛이 때를 따라 축복한 덤불 속
붉은 속살의 호박이 여물고
담을 넘어가던 바람 잠시 머물다 떠나면
머문 바람의 무게만큼 둥근 삶이 그려진다
사 십 년 숨죽이며 살아온 미디안 광야의 모세처럼
댓잎 푸르던 그 투지도 용맹도 삭고
고목처럼 온순해져 호박 하나 그릴 때
햇빛과 바람의 추억 아득히 뜬다.

유년시절 허기진 배 샘물로 다스리던 아이
찢어진 신발 삐죽 고달픈 삶이 내비치고
가을하늘 담은 샘 속 낯선 얼굴
등뒤로 번지는 푸른 하늘이 너무 추워 떨며
따뜻한 햇살 들어찬
호박 하나 품는다.

간절함은 상식도 틀도 허무는가
허기와 바꾼 한 통 그림물감 껴안고
생의 황량한 벌판을 터벅터벅 도달한 빈 방
온기 없는 구들장지고 마른 잠을 청할 때
잠 속에서도 굶주린 눈빛은 살아
꿈꾸는 호박 하나 그릴 수 있다면
흰 솜털 손금처럼 따스한
예쁜 호박 잎 한 장 그려낼 수 있다면
잠도 알맞게 잘라내어

이승 삶의 마지막 그린 호박 속으로
가득가득 밀어 넣을 수 있을 텐 데,
스무 번의 좌절과 서른 번의 도전이
아무리 퍼내어도 줄지 않는
새벽 샘물 같은 차디찬 갈증의 끝을
끝을 알 수 없는 생의 터널을, 도무지
길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새벽에 이끌리어 울며
더듬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

아아, 광야 사십 년의 모래바람을
사 십 년의 이스라엘을 인도하던
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기억한다,
절망과 인고의 비 맞으며 자란 덩굴아래
이제껏 감추어온 빛과 바람의 호박들
예리하게 잘린 꼭지위로
여름내 타다 남은 햇살들 모여들어 더 환하고

넘치는 축복을 맞는다,
붓끝이 움직일 때마다
꼭지 끝 보송보송 솜털이 돋고
바람의 자죽 골진 주름 쓰다듬을 때
화가는 둥근 호박의 철학을 편다
완성이며, 우주이며, 부드러움의 조화를
얘기한다,
덩굴손 한 번씩 허공을 짚을 때마다
개척한 새 길이 열리고, 새로운 삶이 익고
붉고 단단하게 익어 더 절실해 질 때
수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
생명의 소리 듣는다, 천천히 몰아온 바람
저물지 않는 황혼의 꿈길
그 길을 간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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